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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복학과 졸업

 

복학과 졸업

 

    장돌뱅이마냥 전국을 누볐다. 혼잣몸이란 이런 점이 편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면 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 먹으면 됐다. 졸리면 자고, 피곤하면 쉬었다 가고, 그저 뜻한 바대로 나쁜 길 빼고는 모두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음 편한 생활이었다. 게다가 수중에 돈도 지니고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 인생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돌아다니다 날이 저물면 먹고 자고, 날이 밝으면 다시 일어나 돈을 벌러 떠나는 나날이었지만 나는 그런 날의 무의미함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목기를 가득 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치고 있던 이유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천추의 한이었던 가난에서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에서 영혼이 서서히 좀먹어 들어간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어느 날, 봇짐을 내려놓고 어느 궁색한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얼룩진 식당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문득 바라보고 아연실색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열심히 공부하던 이재식의 모습이 아니라, ‘목기 장수 이재식이 앉아 게걸스럽게 국수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제서야 나는 그 동안 잊고 지내던 내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목기 장수로 나선 것이 가난 때문에, 학비가 부족해서, 동생이나 부모님을 위해서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하는 일념에서였다. 그런데 공부에 대한 생각은 저만치 날려 보내고, 돈 몇 푼 모으는 재미에 시간과 청춘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렇게 허망하게 공부에 대한 의지를 상실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조급했다. 나는 남은 목기를 헐값으로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게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적인 물욕에 눈이 어두워 내 인생을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비로소 나는 내가 그 고생을 하면서 전국을 누비고 목기 장사를 했던 이유가 공부 때문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새삼 가슴 속 깊이 되새길 수 있었다. 어떤 이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주면 한 끼 식사밖에는 안 되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 식사를 해결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달콤한 낮잠에 취해 있다가 짧은 해가 지는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얼른 학교로 다시 돌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대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55 2, 여전히 꽃샘추위가 봄을 시샘하여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나는 거의 1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원농고 3학년에 복학하였다.

 

    한편 그 동안 전국을 누비면서 목기 장사를 열심히 했던 덕분으로 생활에 조금은 보탬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장사 밑천으로 마련해 주신 돈도 몽땅 갚을 수 있었고, 줄곧 밀려 있던 학교 등록금도 말끔히 정리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약간의 여유 자금까지도 만들어져서 학비와 생활비로 충당할 수도 있게 되었다.

 

    어째 됐든 1년이 늦긴 했지만, 후배들과 어울려 남은 한 학년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1956 3, 나는 마침내 남원농업고등학교의 눈물 젖은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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