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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토요일이 괴로웠던 까닭

 토요일이 괴로웠던 까닭

 

     “이재식, 뭐하러 나왔어 ‧ ‧ ‧ ‧ ‧ ‧.”

담임선생님의 고함과 함께 책가방이 창 밖으로 날아갔다. 책과 공책이 산산이 흩어지고 혹은 짖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토요일이 나는 가장 싫었다. 토요일은 이처럼 내 책가방이 창 밖으로 내팽개쳐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 형편에 등록금을 제때에 납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저 어쩌지도 못하고 무작정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두 달이지, 반 년 치 혹은 3/4분기까지 밀려간다면 결국 곤욕을 치르는 것은 내가 아니고 오히려 담임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서무과에서 독촉을 받다 못한 선생님은 토요일만 되면 나더러 집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수업은 안 받아도 좋으니 집에 가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법을 한 번 모색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에 가본들 뵤족한 방법이 있을 리 만무한 나로서는 선생님의 말씀을 번번이 거역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선생님을 화나게 만드는 것이다. 집에 다녀오라고 토요일마다 다그쳐도 당신의 말씀에 아랑곳없이 떡하니 등교를 하여 조회시간에 앉아 있는 나를 보시는 담임선생님께선 그만 치미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가방을 집어 던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려는 생각보다도 얼른 밖으로 나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을 책을 챙기는 것에 더 마음이 바빴다. 그리고는 교사 모퉁이에 기대 서서 조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담임선생님이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가시면 나는 다시 교실로 들어갔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종례 시간에는 다시 담임선생님 눈에 띄지 않게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런 숨바꼭질을 하면서도 기어이 교실로 찾아들던 나를 돌이켜 생각해 본다. 좋게 말하면 공부에 대한 집념이 매우 대단했었다 할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눈치 없이 미련했다고 할 수 있었던 숨박질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부모님이나 선생님에 대해서 조금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거나 반항심을 갖지 않았다. 내게 닥치는 쓰라린 고초를 묵묵히 감수했으며, 오히려 나 대문에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심려를 끼쳐드리는 것 같아 그것이 되레 송구스럽기만 했다.

 

    한 달에도 몇 번씩이나 가방이 내던져지는 바람에 내 책과 공책은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당하는 일이라 영 체면이 없을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이 일들을 조금도 창피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은 다만 사는 데 불편하고 아쉬운 것이었지만, 비굴하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철인이 아니었다. 모진 고난을 이겨내는 데는 나에게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가난과 고단함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내 육신은 너무 많이 지쳐 있었다. 한계상황은 이미 훨씬 전에 내게 와 있었는지 모른다. 단지 동생에 대한 책임감과 학업에 대한 열의 때문에 미처 의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조금씩 무력감에 빠져 들었고, 생활에 대한 회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버둥을 치며 현실을 극복해 보려 애를 썼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흔히 하는 말로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들 하지만, 내게 있어 좋은 날은 영영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급기야 나는 신경과민증으로 인한 불면 증세로 밤마다 고생을 해야 했다. 꿈과 이상이 그 어느 때 보다 충천해야 할 학창 시절에, 초라하고 나약한 내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압박해 왔다. 게다가 육체적인 영양실조는 정신적인 무기력과 탈진 상태까지 함께 가져왔다. 병원의 진단 결과도 신경쇠약이었다. 설상가상의 진퇴양난이었다. 도저히 공부를 계속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악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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