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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스승 최규진 선생님과의 만남

 

 스승 최규진 선생님과의 만남

 

    다시 시작된 남원에서의 새 생활은 비교적 그 출발이 순조로웠다. 후에 남원중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내신 최규진 선생님께서 우리형제를 딱하게 여기셨던지 이리저리 마음을 써서 보살펴 주신 덕분이었다.

 

    “이재식, 교무실로 오너라.”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한 게 있나 곰곰 생각해 보았다. 누구나 마찬가지였겠지만, 학창시절에 교무실로 불려가는 것은 그렇게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적미적하며 교무실로 들어서자, 선생님께서 대뜸 물으셨다.

 

    “이재식, 요즘 어디서 지내나? 동생도 중학교에 입학했다고 하던데

‧ ‧ ‧ ‧ ‧.”

그럭저럭‧ ‧ ‧ ‧ ‧ 아는 친구집 자취방에서‧ ‧ ‧ ‧ ‧.”

‧ ‧ ‧ ‧ ‧.”

면구스럽고 부꾸러워 고개를 푹 숙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였다.

 

    “그래? 그러면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도록 하지. 우리 집에 조그만 빈 방이 하나 있는데, 둘이서 생활하기엔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거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각박하여 모두들 살기 어려운 때에 이런 분이 계시는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르게 산다는 것은 우선 나보다 못한 남을 돕고 나눌 줄 아는 참사랑의 삶이라는 사실을 은사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학기 동안 최 선생님의 행랑채에서 순탄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 같은 집 울타리에서 함께 살다보니 자연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특별히 자상하시고 인정이 많으셨던 최선생님은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있던 우리 형제를 두루 돌보며 챙겨주셨다. 또한 강인하고 건강한 정신력을 훈련시키기 위함이셨던지 아침 기상 시간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여 근면함과 성실성을 길러주셨다. 나는 지금도 우리 형제를 위해 베풀어 주시던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의 집안 사정 때문에 방을 비워주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우리 형제는 할 수 없이 최 선생님 댁을 나와야만 했다. 선생님께서는 오히려 나보다 더 미안해하고 민망해하셨다. 나도 몸 둘 바를 몰랐다. 또 다시 지낼 곳을 걱정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 댁에서는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을 만큼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보다 더 어려웠던 적도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 동안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진정으로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을 올렸다. 공연히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앞으로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생님과 같은 큰 사랑의 삶을 살리라고 다짐했다.

 

    ‘남을 돕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어 이 세상을 떳떳하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동량을 키우는 데 내 몸을 바치리라.’

 

    하나님의 교훈과 사랑의 화신이 되신 모습을 보고 변화한 사도 요한의 경우만큼 나는 최 선생님을 통해 커다란 감화를 느꼈다.

 

    “선생님, 제가 이렇게 컸습니다. 당신께서 주신 큰 사랑의 이슬을 먹고 자라 이제 한 사회의 작은 밀알이 되고자 합니다. 부디 씨앗으로 떨어지며 번성케 하렵니다.”

 

    이제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뵈었던 젊고 건강하신 모습 그대로이다. 또한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숭고한 교사상과 교육정신도 잘 기억하고 있다. 학창시절, 한창 희망을 꿈꾸던 때에 내게 은혜로움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만이 아니다. 선생님께선 교직을 평생의 보람과 긍지로 삼고,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시는 밀알 된 진리의 사랑과 인자함을 몸소 보여주셨다. 사랑 가운데 이 세상 깊은 곳까지 드높은 교육의 상을 우뚝 세워 온 누리를 밝게 비추라는 묵시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땀을 사랑하는 교육이념으로 선생님의 지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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