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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첫 고배를 마시다

 

첫 고배를 마시다

 

    나는 하릴없는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모르겠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엇이든 의지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손쉽게 해결되는 줄로 믿고 있었다. 전주고등학교에 지원한 것 역시 그런 안일한 생각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나는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세상은 크고 넓었으며, 뛰어나고 똑똑한 사람도 매우 많았다.

 

    전북 최고의 명문교답게 전주고등학교에는 내 노라 하는 수많은 수재들이 몰려들었다. 한결 같이 도내의 각 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특출하고 탁월한 우등생들이었다. 남원중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이 응시했다. 우리들 역시 학교에서 손꼽힐 만큼 우수한 학생들이었음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입학에 실패하고 말았다. 내 인생에 있어 첫 고배를 마신 것이다. 실패의 쓰라린 아픔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원중학교에서 응시한 12명 전원이 불합격하였다고 하니 명문교의 높은 문턱을 실감하게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불합격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전주에있는 2차 고등학교에 응시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불을 보듯 뻔한 형편에, 더욱이 대도시 전주에까지 나와서 원하던 학교도 아닌 곳을 굳이 다녀야 하는지 작잖이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결단을 내려야 할 판국이었다. 나중에야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후회라도 없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전주 신흥고등학교에 2차 원서를 냈다. 그리고 무난히 합격했다. 따지고 보면 신흥고등학교 합격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건만, 오직 전주고등학교를 목표로 삼았다가 그것이 좌절되면서 느끼는 허전함 때문에 모든 것이 탐탁하지 않았다.

 

    특히 동생 춘근이가 마음에 걸렸다. 공부를 썩 잘하는 동생이었지만, 중학교 진학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나 하나도 허겁지겁 겨우 학비를 대왔던 부모님 입장에서는 마음은 간절해도 어쩔 도리가 없으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과감하게도 전주 신흥고등학교의 입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춘근이에게 남원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게 했다. 다행히 공부를 잘했던 춘근이는 장학생으로 뽑혀 일단 등록금 걱정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하게 된 것은 내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