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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식 이사장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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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령, 그 저편의 기억 태령, 그 저편의 기억 학년이 높아지자 학교에 다니는 일이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수업 학과목이 많아지면서 방과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어두컴컴해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데, 태령을 넘어 학교를 오가는 등하교 길이 위험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늦게 해가 뜨고 가장 일찍 해가 지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이었기에 오후 대여섯 시만 되면 벌써 주위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둠이 덮쳐오는 것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일본 순사가 물러가면서 태령에는 늑대나 여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화약 냄새를 싫어한다는 이들 동물이 그 동안에는 깊은 산 속에서 숨어 지내다가, 총을 맨 일본순사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자 대담하게 마을까지 출몰하는 일이 많았다. 실제로 이들과 맞닥뜨린 일도 있었다. 그..
점심 도시락 점심 도시락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 “저, 다시 학교 갈래요.” “학교? .......그런데?” “아버지께서 학교에다 말씀 좀 해주십사 하고요. 제가 지난 3학년 2학기 때부터 학교에 나가지 않은 사정 이야기를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 주세요.” “알았다. 그럼 이 기회에 ..
8 ‧ 15 해방이 내게 준 교훈 8 ‧ 15 해방이 내게 준 교훈 “너, 내 방에 좀 들어오너라.” 면주재소에 다녀온 아버지께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안절 부절 못하며 큰 형님을 부르셨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큰형님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아버지를 따라 총총히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덜컥 겁이 낫다. 여간해..
배움의 기쁨으로 만학천봉(萬壑千峰)을 넘으며 배움의 기쁨으로 만학천봉(萬壑千峰)을 넘으며 어쩌면 그렇게도 혹독하고 끔찍하게 가난했던 생활 속에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엄두도 내지 못할 것 같은 분에 넘치고도 당돌한 결심이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
어린 시절 어린 시절 나는 1934년 음력 7월28일, 이 같은 오지의 산간벽지에서 4남 2녀의 3남이자 다섯째로 태어났다. 민족은 남의 나라 손아귀에 들어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 있었고, 게다가 궁벽한 산골에서 태어났으니 가난은 어쩔 수 없이 내가 타고난 운명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없는 집들이 그러..
내 고향 성암리 내 고향 성암리 지금도 까만 밤하늘에서 반딧불이가 날고, 깊은 수림에서 하늘소가 노니는 마을이 있다. 5월이면 산숲을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는 흐드러진 철쭉꽃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고의 장관을 이룰 만큼 대단한 봉화산 및 아막산 성재의 높고 넓은 지대의 철쭉..
머 리 말 머 리 말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뒤돌아보면 온갖 괴롭고 어려운 일들로 참으로 많은 고통과 사건을 겪어온 나날이었다. 그래서 역경의 교훈과 인내의 가치를 깨달으며 살아온 삶이기도 하였다.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오지(奧地)에서 태어나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