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에 시작한 한글 공부 "잃어버린 내 인생 찾아“
한글배우지못한고령층, 태어나서처음해본공부에 '웃음꽃'
"11남매맏딸로태어나글못배워…이름도못썼던 80년서러웠다"
[편집자 주] '노인情'은 지금을 살아가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옳은 말씀 들을 때는 무릎을 꿇고~두 귀가 뚫어지게 들어야 한다 ♪
신발이 다 닳도록 학원 다니면~
잃어버린 내 인생을 다시 찾는다 ♬
서울 동대문구 한 학원에서 서른 명 남짓 노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뜻 노래 교실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한글 교실이다.
노인들은 동요 '산바람 강바람'을 개사해 'ㅀ' 받침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이곳에는 그 1%도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잃어버린 내 인생'을
찾고 있었다.
■ 배우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학원 등록도 못 하고 '전전긍긍'
지난 2일 방문한 A학원 한글반은 여느 중고등학교보다 활기를 띠고 있
었다.
강사가 '화분을 거실로 들여놓았다'라는 예문을 읽자, 머리가 희끗한 노
인들은 큰 소리로 따라 하며 한 글자씩 받아 적었다.
강사의 말에 "예" "네" "아니요" 빠짐없이 대답하는 모습은 해맑은 유치
원생을 떠올리게 했다. 약 30명의 노인 중 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
었다.
한글반의 주 연령대는 65~80세다. 적지 않은 나이다 보니 찜질기를 허
리에 두르거나 복대를 차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수업 태도가 좋냐고 관계자에게 묻자, 처음부터 적극적
이진 않았다는 게 답변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수강생의 대부분은 한글반 등록을 망설인다. 가장
큰 이유는 배우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두세 번씩 학원 앞까지 왔다가 용기를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인이 많다. 못 이긴 척 가족의 손에 이끌려 오거나, '영어반도 있
냐'고 운을 떼다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털어놓는 경우도 있다.
강사가 학원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노인을 보고 직접 설득해 한글을
배우게 된 노인이 올해 2명이나 있었다는 후문.
학원 관계자는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학원에 오기 어려워한다"며 "하지만 학원에서 비슷한 사람
을 만나고 공부하는 재미를 깨달으면서 자신감을 찾게 된다"고 설명
했다.
이어 "지금이야 누구나 의무교육을 받지만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다"
며 "공부해 본 적이 없어서 책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분
들도 있다. 모두 배우지 못한 한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고 강조했다.
■ "이름 못 썼던 80년… 한글 배우고 자신감 생겨"
시골에 학교가 없어서.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서. 농사일을 해야 해서
등 저마다 배우지 못한 사연은 제각각이지만, 결국 이유는 그 당시의
가난으로 수렴한다.
다만 유독 눈에 띄는 건 한글반 수강생의 90%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
이었다. 실제로 이날 수업에 참여한 약 25명의 노인 중 단 2명만이
남성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여성 수강생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를 과거 남성중
심적 사회와 연결 지어 설명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녀를 많이 낳
다 보니 모두 교육시킬 수 없었고 남성이 주로 기회를 받았다는 것.
이러한 인습은 A학원을 9개월째 다니고 있는 김관자(83세) 할머니
의 사연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 할머니는 11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전쟁과 보릿고개를 겪으며 유
년시절을 보냈다. 글을 배울 새도 없이 집안일을 했고 10명의 동생
을 돌봤다. 그가 18세가 되던 해 조부는 보리 두 가마를 받고 김 할
머니를 시집보냈다.
결혼 후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다. 가정을 살피면서 76세까지 의류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고 83세가 되어서야 겨
우 글을 배울 수 있게 됐다.
김 할머니는 "어느 날 아들이 차를 태워주더니 학원에 데려가더라.
내가 글을 배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라며 "아들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이어 "평생 배워 본 적이 없어서 글씨를 쓰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아침에 눈을 뜨면 얼른 일어나서 세수하고 숙제부터 해놓는다.
학원 갈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최근 학원에서 칭찬을 받았다며 쑥스럽다는 듯 숙제
노트를 펼쳤다. 노트에는 '흑임자죽'과 '맨처음인데요', '절임배추'
라는 글씨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참 잘했어요'를 뜻하는 빨간
색 하트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는 "이름도 쓸 줄 몰라서 병원이나 은행을 가면 직원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간 답답하고 서러워서 참 많이 울었
다"며 "지금은 내 이름이랑 간단한 단어를 쓸 수 있다. 정말 용기
가 생긴다"고 말했다.
#노인 #한글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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